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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성의 전략과 경계의 미학 위에서 _ 김홍희 2008/08/24

월간미술 1999년 3월호
Special Artist – 조덕현



이중성의 전략과 경계의 미학 위에서
김홍희 <미술 비평>



사진 원본을 모사 ∙ 재현하여 그것을 능가하는 재현성과 회화적 매력을 발산하는  조덕현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그는 80년대 후반 국내 화단의 새로운 경향이었던 탈모더니즘 미술의 대표주자였다.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아왔던 조덕현은 모더니즘의 조형성과  포스트모던적 내용성을 결합하여 한국 특유의 이미지를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조형 언어로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글에서 필자는 조덕현의 작품을 ‘사진화’로 명명하면서 사진과 그림,  액틀, 내러티브 사이의 구조를 분석한다.


정교한 사진적 세밀화와 특정 설치 방식으로 데뷔 즉시 이름을 얻어 한국미술의 유망주로서 발 빠르게 성장해온  작가 조덕현. 지난 10년간의 그의 작가적 성공과 인기는 90년대 한국화단의 지형뿐 아니라  세계 속 한국미술의 위상을 가늠케 하는 하나의 척도가 된다. 그는 미대 학창시절에 모더니즘 미술과 민중  미술의 첨예한 대립을 경험하였고 대학원을 졸업하는 1988년 즈음에는 탈모더니즘의 기류 속에서 문제의  작가로 등단하였다.


모더니즘 ∙ 민중미술 ∙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질적이고 대립적인  요소들의 공존과 갈등으로 형성된 90년대 한국 화단의 징후를 한 몸에 담고 있듯이, 그의 작업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의 모습으로 용해되어 나타난다. 모더니즘적  미의식과 민중미술의 정치의식, 모더니즘 조형미학과 포스트모던 내용미학을 절묘하게 결합하고 있는 그의  작업이 모더니즘/민중미술,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중적 이분구도에 신선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구나  미술문화의 국제적 경쟁력이 요구되는 현시점에서 한국 특유의 이미지를 현대적인 조형언어로 일궈냄으로써 국제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바람직한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조덕현의 작품세계는 중층적이고 복수적인 이중성의 기초 위에서 구축된다. 그의  사진적 정밀화는 사진과 그림의 양면성을 포함하며, 그 이미지는 입체적 프레임 속에서 오브제 성을 획득하고  그것은 다시 특정 공간 속에서 설치작업으로 전환된다. 이미지이자 오브제이자 설치물로 존재하는 그의 작업이  미니멀리즘의 절제와 밀도를 표상하는 한편, ‘맥시멀리즘’의  풍요와 다채를 과시하면서 조덕현 특유의 ‘포스트미니멀리즘’을 창출한다.


작품내용에서도 그는 민중미술과 모더니즘의 공동과제인 주체의식과  역사의식을 신봉하는 반면, 타자의 역사에 주목함으로써 스스로를 포스트모던 탈이분법의 대열에 위치시킨다. 특히 한국 근대사에 여성의 역사를 병치시키며, 자신의 아버지 ∙  어머니 ∙ 아들 ∙ 딸을 주제화함으로써 일반 사회사를 개인사로 탈코드화시킨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 글은  조덕현의 작품세계가 이중성의 전략과 경계의 미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전제한 뒤 이를 논증하기 위하여 그의 작업을 ‘사진화’ ‘프레임’ ‘내러티브’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분석해 보고자 한다.


사진화 : 사진과 그림 사이에서


 조덕현의 이중성은 그의 작업의 핵심을 이루는 사진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사진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사진을 모사한 ‘사진화’이다. 사진을 기초로 사진적 사실주의를 구사하고 있는 점에서 그는  ‘눈속임(trompe l’ oeil)’ 수법으로 사진 같은  사실화를 그리는 리얼리스트들과 구별된다. 즉, 현실을 대상으로  의사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표본으로 의사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이미 이미지화된 마릴린 몬로의 초상을 재 이미지화시키는 앤디 워홀에 비견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지를  자신의 스타일로 양식화시키는 대신에 그것을 있는 그대로 모사함으로써 사진적 리얼리즘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워홀과는 다르다.


그는 왜 기존의 사진 이미지를 모사하며 그 중에서도 풍경이나  정물보다는 인물만을 그리는 것일 것. 사진이 도상적 재현과는 다르게 지표적 제시라는 점에서 기존의 제현체계를  거부하는 강력한 포스트모던 매체로 재등장하고 있음은 로잘린 크라우스의 인덱스 논의에서 이미 명시되었지만, 사진은  현대미술에서 매체 이상의 인식론적 의미를 지닌다. 조덕현의  사진 사용이 변화된 패러다임의 수용인지 자발적인 충동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사진을 밑그림으로 사용하여 지표적 리얼리즘을 산출하는 사진화의  발상이 그를 모더니즘 세대로부터 분리시키는 단서가 된다.


작가 자신의 사진에의 매혹은 매우 사적이고 무의식과 관계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곱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사진에 남다른 감흥을 갖게 만들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사진을 통해 부정(父情)에 대한 상실감을 채우고 실존적 상상력을  키우는 조덕현의 작가적 태도는 온실에서 찍은 어머니의 소녀적 사진을  보며 어머니의 체험을 추억과 역사로 환기시키고 그것을 통해, 사진의 본질을 캐내려 했던 롤랑 바르트의  지적 탐구를 유추시킨다.


바르트에게 어머니 온실사진은 여느 어머니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어머니,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나’의 어머니, 그 빛나는 영혼이다. 바르트는  이 온실사진을 ≪카메라 루시다≫에서 역설하고 있는 ‘스투디움(stadium)’과 ‘풍크툼(punctum)’의  구별을 요약하는 징표로 사용한다. 어머니의 사진이 독자에게는 일반적인 어머니의 존재를 알리는 ‘스투디움’이지만 자신에게는 자신의 내부를 찌르는 ‘풍크툼’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정보  ∙ 기호 ∙ 평균치를 나타내는 스투디움이 문화적 영역을 대변한다면, 풍크툼은 코드화될 수 없는 무의식, 파편, 우연, 사적인  애정을 표상한다. 스투디움의 조화를 깨고 나를 상처입히고 구멍내기 위하여 화살처럼 다가오는 찌름의 충격, 이것이 풍크툼이다. 환유적이고 제유적인 확장의 힘을 갖는 풍크툼에  의해 사진 속에 죽어있는 인물이나 사건이 유령처럼 되살아난다.


바르트의 이러한 논리를 조덕현의 작품에 대입시키면 그의 사진화는 스투디움에서 풍크툼으로의 전환 작업에 다름 아니다. 사진의 차가움에 드로잉의 손맛으로 온기를 보태주고 객관적 사실에 추억을 보탬으로써 다큐멘터리를 개인적 내러티브로  치환시키는 것이다.


그의 사진 이미지가 정체화된 역사화보다는 삶이 깃는 풍속화에  가깝고, 주물화된 초상보다는 생명감이 감도는 인물화에 가까운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가 풍경이나 정물보다 인물을 소재화하고 있는 까닭도 역사적 지식보다는 인간적 관심, 논리보다는 감흥, 다큐멘터리보다는 내러티브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그의  풍크툼적 감수성에서 찾을 수 있다.

  

  그에게 사진은 리오타르가 말하는 ‘형상(figural) 언어’, 즉  담론 ∙ 언어 ∙ 의식 ∙ 검열과는 무관한 꿈 ∙ 시각 ∙ 욕망에 관계되는 무의식 언어의 시각화로 여겨진다. 사진이라는  비모던적 형상언어에는 이념 ∙ 정치 ∙ 정보 이상의 삶과 생명이 깃들어 있다.


조덕현의 사진화는 그것이 양식적 변화나 해석을 거치지 않은 사진 이미지의 반복적 모사라는 점에서 논의의 대상이  된다.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스트들이 확대 투영한 사진을 밑그림으로 사용하되, 사진 특유의 초점을 없애고 인위적인 구도로 카메라의 앵글을 변화시킴으로써 고유 양식을 마련하였던 것과는 달리, 조덕현은 사진 그대로를 손 작업으로  재생산해낸다. 모사적 재생산이라는 점에서 그의 사진화는 ‘작가의  죽음’이라는 포스트모던적 명제에 부합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는 사진을 손 맛나는 드로잉으로 모사해냄으로써 기계적 재생산의 과정을 역전시켜 손상된 원본성의 아우라를 복원하고 있다. 이것을 바르트식으로 말하면 풍크툼이 될 것이며, 그것을 통해 조덕현은 리오타르가 말하는 무의식적 형상언어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조덕현의 사진 사용은 차용의 맥락에서도 이해가 가능하다. 그는 이미  미대 4학년 당시 유채로 그린 <군상>시리즈, <아담의 창조>  등에서 고전을 인용하고 특히 세잔의 사과를 패러디 함으로써 아카데미즘에서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회화 전통을 차용하였다. 고전의 차용에서 사진의 차용으로 이전된 것이 그의 사진화이며 이러한 변화는 재현에서 제시, 도상에서 지표로의 관심의 이전을 반영한다. 그러나 그는 사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드로잉의 원본으로 차용함으로써 제시적이고 지표적인 사진을 재현적이고 도상적인 그림으로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다.


결국 사진의 차용과 회화의 복원이라는 이중의 전략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 그림과 사진의 경계에 선 그의 사진화인것이다.


프레임 : 오브제에서 설치로


 조덕현이 사진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88년경이다. <20세기의  추억>이라는 연작을 구성하는 이 사진화들은 6.25 전쟁과 4.19혁명 등 정치 사회화의 일면을 보여주거나 개화기의 장터모습이나 결혼 사진 등 풍속도를 소개하기도 한다.


그는 콘테와 연필로 그린 이 대형의 흑백 사진화들을 앞으로  돌출된 육중한 프레임으로 둘러치고 있는데, 이것의 그의 초기 사진화를 특징을 만든다. 이미지를 압도하는 철제 프레임의 위풍당당함이 그의 사진화를 미니멀적 오브제로 전환시키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프레임은 탈모던적 암시로 가득하다. 적십자  마크 ∙ 지도 ∙ 계급장 ∙ 못 ∙ 격자무늬로 장식된 프레임은 미시적으로는 맥시멀리즘을, 거시적으로는  미니멀리즘을 표상하고 있다.


조덕현의 프레임은 이렇듯 일반 액자 이상의 기본적 조형요소가 되는데, 그것에  의해 일회적인 사진 이미지가 견고함과 영원성을 부여받고 일화적 내러티브가 역사적 기념비로 전환되는 것이다.


조덕현의 프레임은 내부의 사진화가 담지 못하는 공간을 실제로 담아내려는 듯이 앞으로 돌출되어 있다. 물리적 공간을 담는 이러한 프레임이 오브제로 그치지 않고 공간적으로 더욱 확장된 것이 암실 구조의 설치물이다.


암실 내부 깊은 곳에 부착된 사진화, 그것을 둘러싼 주위 공간 자체가 프레임처럼 보인다. 이 암실 설치에서  조덕현은 초기의 그룹초상보다는 고립된 단독 이미지를 사용하는데, 할로겐 조명이 사진화를 비추면서 그것을 탈물질화 시킬 때에 이미지의 제의적 성격이 한층 강화되며 내부 사진화와  외부의 공간적 프레임의 극적인 대비가 증폭된다.


최근에 그는 암실 설치 대신에 박스형의 수송용 크레이트를  만들고 있다. 1백 90 X 1백 30센티미터의 크레이트 한 면에 등신대 크기의 단독 인물화를 부착시키고 있어 한쪽 문을 열면 그 안에 부착된  사진화가 전시되는 일종의 이동식 암실인 것이다. 이 크레이트는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1997)와 버지니아 미술관 개인전(1998) 등 잦은 해외전에서  번번이 치러야 하는 설치의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고안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관을 연상시키는 장방형의  크레이트를 통해 얼어붙음, 부동성, 갇힘, 나아가 ‘죽음’이라는  사진의 본질을 은유하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결국 사진을 영구 보관하는 대형의 함, 제식의 상자가 아닌가.


그는 이미 크레이트 건조 이전에 땅에 묻었던 널판지로 만든  소형의 입방체 상자나 불태운 군용 탄약상자를 프레임처럼 사용하여 그 속에 사진을 부착시킨 박스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1995년 펜실베이니아대학 부속ICA미술관에서는 40X40X45센티미터의 박스 2백여 개로 피라미드 모양의 수직 구조물을  쌓았고, 1996년의 국제화랑 전시에서는 그것들을 땅바닥에 수평적으로 늘어놓았다.


그에게 상자는 프레임 ∙ 암실 ∙ 크레이트와 마찬가지로 사진을  보관하는 물리적 공간이자 사진의 풍크툼을 환기시키는 제식적 장치이다. 그러나 동일한 구성 단위의 반복으로  일정한 그리드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 상자 시리즈는 조형적으로는 미니멀 감수성을 노출시킨다. 육중한  입방체적 프레임의 사용에서도 암시되었듯이, 이 미니멀적 조형이 그의 일시적 ∙ 일화적 사진화에 역사의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결국 그의 프레임은 제식과 조형이라는 이중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미학적 중추인 것이다. 제식적 프레임속에서 풍크툼이 환기되고 조형적 프레임속에서 스투디움이 확보되는  가운데 그의 사진화는 풍크툼과 스투디움의 이상적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조덕현은 사진화를 평면 그대로 전시하지 않고 돌출된 프레임 ∙ 상자 ∙ 크레이트 속에 안치시킴으로써 시간과  광학에 관계되는 사진에 공간적 맥락을 부여하고 있다.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회화의 영원한 3대 명제이자 물리학의 3대 요소인 시간 ∙ 공간 ∙ 빛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그는 부계적 미술 전통에 충실한 포스트미니멀리스트인 것이다.


그가 부계전통의 계승자라는 점은 그의 회화적 실험과 결단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깃발 ∙ 과녁 ∙ 숫자와 같이 평면으로 존재하는 사물을 재현의 대상으로 삼았던  재스퍼 존스와 마찬가지로 조덕현은 존재론적 평면인 사진을 대상화함으로써 3D물체를 2D로 재현한다는 회화의 원천적 문제를 해소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고전-아카데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계보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듯, 그는 이미 1987년  파스텔로 그린 그리드 속의 사과 하단에 세잔과 자신의 출생년도를 함께 표기하기도 하였다.


내러티브 : 대서사보다는 소서사


조덕현 사진화의 중심 내러티브는 그의 대표 연작인 <20세기의  추억>으로 명시된다. 그는 한국 근대사의 추억 속에  정치사뿐 아니라 여성사, 풍속사, 그리고 자신의 가족사를  포함시킨다. 다큐멘터리 전쟁사진으로부터 개화기 풍속사진, 이름없는  그룹초상으로부터 지인들의 옛 사진,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 ∙ 아들 ∙ 딸까지 어떠한 동기에서건 자시에게  풍크툼을 환기시키는 사진이면 무엇이든 소재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사진 장면들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객관적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환기시키는 추억과 감흥이다. 요컨대 그는 대서사보다는 소서사, 즉 권력과 역사적 담론이 제외시킨 일상 ∙ 주변 ∙ 세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 점에서 역사적 사건이나 담론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의식과 특정이념을 고취시키는 사실주의 민중화가들과  다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적 텍스트가 아니라 시각적 풍크툼으로서, 그는 자신 특유의 조형언어를 통해 그러한 사적 정취를 관객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1992년 딸의 탄생의 기해 착상하게 된 <한국여성사>에서 페미니즘 의식보다는 일종의 감상이 앞서는 까닭도 이와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다. 그가 그리는 여성사는 가부장제의 모순이나 여성억압에 대한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딸의 존재를 통해 새삼스럽게  인식되고 염려되는, 그리고 작가 자신의 어머니가 밟아온 인생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성되는 한국 여인의  운명 또는 한에 대한 잔상이다.


작가의 어머니는 1926년생으로  동란을 치르면서 9자녀 가운데 셋을 잃고 1960년대에 아버지  없는 6남매를 데리고 상경한, 20세기 한국 여성사의 산  증인이다. 그는 모성의 위대함을 기리기 위해 <20세기  인물전>(1926년, 노화랑 개관기념전)에 어머니를 모델로 등신대 크기의 사진화를 제작하였다. 윤석남의 최승희, 임옥상의 신채호, 한만영의 윤이상 등과 함께 조덕현의 이름없는 어머니가 20세기 인물로 등장한 것이다.


1997년 뉴욕 에머릭 화랑 개인전에도 출품한 <나의 어머니>, 열려진 크레이트 내벽에 걸린 어머니의 얼굴은 사랑과 위엄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몸을 앞으로 구부린 채 자신의 옷자락을 들고 있는 어머니의 오른손 끝으로부터 실제 무명옷감이 연결되어 있다. 환영적 공간에서 실제 공간으로의 확장과 함께 천의 의미가 되살아난다. 한국  여성의 제2의 피부와도 같은 흰 무명천을 통해 그는 우주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인 여성과 모성의 희생정신을  말하려고 한 것 같다.


그는 이미 1993년  국제화랑 전시와 1994년 동경 소게츠 미술관 전시 때에도 어머니 초상을 선보였다. 어머니가 입은 한복에 실제 베틀 몸체의 실을 부착시켜 씨줄과 날줄의 교차를 가시화한 이 작품에서도 그렇듯이, 그는 사진 이미지와 함께 화장대 ∙ 지함 ∙ 베틀 몸체 ∙ 천 ∙ 실 등 실제 여성의 비품을 등장시킴으로써  실제와 환영의 문제를 제시하는 한편, 여성사를 사회사보다는 풍속사적 시각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소서사, 여성적  내러티브가 조덕현 창조심리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전술한 미니멀적 프레임, 그리드적 반복구조, 입방체의 선호 등에서 감지 되듯이, 그의 조형적 방법론은 지극히  남성적이다.


남성적 조형의 발상은  1994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그는 상파울루가 서울과 지리적 대척지라는  점에 착안, 개념적으로 지구를 관통하여 서울과 상파울루를 연결한다는 야심만만한 프로젝트를 시도하였다. 사방 3백20센티미터의  철제 입방체 구조물을 비엔날레 공원에 묻었다가 개막일 크레인을 동원하여 그것을 파 올리고 무속적 제식을 올리는 상징적인 작업이었다.


한국적 정서를 리터럴(literal)하게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개관 행사로 채택되어, 본 행사 디렉터 넬슨 아길라를 비롯해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후 3시부터  철제 구조물이 올려지고 준비된 퍼포먼스가 거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조덕현은 예기치 못한 생애 최악의 사고를 맞게 된다. 묻어두었던  그 큰 철제 상자가 흙에 밀착되어 움직이지 않았고 크레인은 흙과 하나가 된 상자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상파울루를 네 번이나 방문하며 거창하게 준비한 프로젝트가 자연의 무서운 힘에 의해 무산되는 현장이었다.


조덕현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실망감과 함께 그 순간 자연의 살아있는 힘과 그 의미를 깨달았다. 자연에 순응하듯, 그는 상자를 들어올리는 대신에 파고들어 가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지상 대신 지하 퍼포먼스로 개념을 바꾸었다.


상파울루의 경험과 교훈이 그에게 일종의 여성적 계시였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 사건을 계기로 그는 지상으로 들어올리는, 즉  자연을 거스르는 남성적 힘의 원리로부터 지하로 파고들어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여성적 화합의 원리로 선회한 듯하다. 이 아닐까. 그러한 까닭에서인지 그 이후 그의 작업은 발굴 또는  출토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일례로 그는 강원도 횡성 아버지의 무덤 근처에 거푸집 널빤지를  자연적 활성기인 늦봄에서 초가을 사이 3개월간 묻어 놓았다가 그것을 파내어 최소의 손질을 가한 후 그  패널로 상자를 만들어 상기한 1995년 ICA전시 설치작품으로  사용하였다. 개개의 상자를 장식한 이미지는 상파울루 사건 한달 후 태어난 아들의 초상이다. 횡성이라는 고향은 아버지와 아들을 연결하는 특정 장소이자 남성의 역사를 여성적 맥락 속에 안치시키는 자연적  모체인 것이다.


탈모던을 위한 이중코드


 이상으로 본 바와 같이  조덕현은 양식이나 내용 모두에서 이중코드로 작업한다. 그것은 결국 부계전통과 모계전통의 이중성으로, 그는 서로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를 요구하는 이 두 가지 흐름을 경계의 미학으로 결합시키고 있다. 언어와 교육을 통해 전수되는 부계적  유산과 여성의 사회적 ∙ 심리적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모계적 유산을 한 몸에 지니고 이중코드로 작업하는 여성작가들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남성작가들은 인가된 남성 단일코드로 작업한다.


이들에 비하면 조덕현의  이중 젠더(gender)적 작업은 부계질서에 대한 위반이요 반란이다.  특히 대서사보다는 소서사를 선호하고 어머니와 딸을 주제화하며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모성적 맥락에 재위치 시킨다는 맥락에서 조덕현의 작품은 내용면에서 페미니즘 독해를 가능케 한다.


그러나 조덕현의  페미니즘 관점은 체험보다는 현학적인 타자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페미니즘을 이념이나 목적이 아니라  일개의 이슈나 소재로 축소시킬 소지를 안고 있다. 페미니즘의 주체인 여성과는 다르게 남성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즘을 단지 비평적 변장으로 차용, ‘페미니즘의 옷을 입은 부계적 버지니아울프’로 왜곡하기 쉬운 것이다.


작가 조덕현에게는  페미니즘이 비평적 변장이라기보다는 창조적 이중코드를 성취하기 위한 탈부계적 ∙ 탈모더니즘적 대안으로 보인다. 그는  페미니즘을 이슈화하기 이전에 부계/모계, 남/여의 탈이분법적 경계 위에서 그것을 유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조덕현의 작업에 대한 페미니즘 독해를 주저하게 만드는 국면이자 크게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인식론적 차이를 반영하는 일이지만, 조덕현은 바로 그 경계의 미학 위에서 포스트미니멀한 자신 고유의 작품세계를 일구고 있는 것이다.


이중성의 전략과 경계의 미학이 조덕현의 작품에 중층적 의미를 부여하는 반면, 그것이  부정적으로 차용, 작품에 밀도를 덜해주거나 작가적 정체성을 약화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소재적 측면에서 이러한 우려의 소리가 높아질 수 있는데, 예컨대  소재의 다양성이 탈권력적 소서사로 승화, 등록되기 이전에 단순 소재주의로 흘러 특정 주제 의식을 부각시키는데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서사의 해체라는 명분과 소재주의의 위험 사이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것이  조덕현에게 주어진 예술적 게임이다.


작품 소재와 관련하여 다른 한 가지 사소한 지적을 하면 그가  한국의 근대성이나 여성성을 과거지향적인 모티프에서만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한국의 정체성을  과거의 추억이나 복고적 전통만이 아니라 현대적인 것, 당대적인 것, 지금  창조하고 있는 것에서는 찾을 수는 없을까.


특히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고 있는 지금, 20세기의 추억이나 향수가 관객이나 작가 자신에게 전과 같은 임팩트를 줄 수 있을까. 이제 조덕현에게 남은 과제는 ‘20세기의 추억’을 ‘21세기의  비전’으로 대치할 새로운 소재,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찾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23   From History to Memory_ Jiyoon Lee  
22   Butterfly Dreams, Mirrors and Mountains / Notes for Duck Hyun Cho: re-collection _ Pontus Kyander  
21   나비 꿈, 거울과 산 / 조 덕현을 위한 기록 : 리-컬렉션 _ 폰투스 키안더  
20   조덕현의 전시: 리콜렉션 re-colllection _ 신지영  
19   역사에서 기억까지 _ 이지윤  
18   The Scattered Puzzle Pieces _ Dae-Beom Lee  
17   흩어진 퍼즐 조각 _ 이대범  
16   Re-collection : Walking down two women's paths _ Jiyoung Shin  
15   Cho Duck–Hyun _ Ann Landi  
14   조덕현 _ Ann Landi  
13   Ontmoeting: (Trans) fusion of Landscape Portraiture and History Painting by Use of a Symbolical Device in Cho Duck Hyun's Digital Photo-Images _ Inhee Iris Moon  
12   A moral proposal _ Patrick T. Murphy  
11   Two Mysteries Colliding _ Chtistopher French  
10   Leaning forward, Looking back – Jeff Kelly  
9   Restoration of Civilization _ Yongwoo Lee  
8   Reversing the Historical Imagination _ Young June Lee  
7   Entering Yiseoguk _ Choi Won Oh  
6   Cho Duck-Hyun – biographer of illusions _ Jan Donia  
5   From an Alien Past _ Hyunok Jung  
  이중성의 전략과 경계의 미학 위에서 _ 김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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