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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덕현의 전시: 리콜렉션 re-colllection _ 신지영 2008/09/02
조덕현의 전시:  리콜렉션 re-colllection


신지영
      
언어는 심리적 방어 메카니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보편적 언어로 신화와 제례를 지적하곤 한다. 자연에 대해 복잡한 언어를 가지지 못한 원시인들이 폭우가 쏟아지고 번개가 내리치는 세상을 대면하기란 쉽지 않다. 두려움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자신이 대면한  우주를 해석할 수  있는 언어가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한 순간 모든 것을 쓸어가는 빗줄기와 세상을  태워버릴 것 같은 천둥 벼락 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왜 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할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사물을  개념화하는 언어는 세상에 논리를 부여하고  질서를 세운다. 이해할 수 있기만 하다면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 설명할 수 있는 한 해결책은 있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한다. 신이 있는 한 변덕스러운 자연과 오리무중의 인간사에는 논리가 깃든다. 자연과 인간 삶이 변덕스럽다면 그만큼 변덕스럽고 흉악한 신을 상정하기만 하면 된다. 이해할 수 있는 한 공포는 줄어든다. 재앙이 밀려닥칠 때마다 바쳐지는 제사와 신화는 그래서 인간이 만들어낸 최초의 언어로 일컬어진다. 오리무중의 세상을 대면한 인간이 두려움에서 자신을 구제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 메카니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역사와 기억: 기억으로의 순례    
    
조덕현 전시에는 일층과 이층, 계단을 두고 엇갈린 방에 서로 다른 여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바로 노라 노(Nora Noh)와 레이디 로드미어(Joeong-shun Lee, Viscountess Rothermere)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여성들이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지만 한국과 서구라는 공간적인 거리만큼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여성의 이야기가 층을 달리하는 한 전시장에서 서술된다. 대화를 나누듯 두 여인의 그림이 마주 한 전시장 입구를 지나면 샹들리에와 식물 모양의 벽지가 어느 집 거실에라도 들어선 듯 정겹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방을 만나게 된다. 은밀한 방에는 그만큼 사적인 기억으로 가득 차있다. 패션 디자이너 노라 노이다. 오래 된 앨범을 들추듯 방안에는 노라의 앨범에서 골라낸 각기 다른 사진들이 그녀 삶의 다큐멘터리가 되어 전시장 벽을 장식하고 있다.

1928년에 한국 최초의 방송국, 경성방송국 설립자인 재력가 노창성과 한국 최초의 여자 아나운서 이옥경의 딸로 태어난 그는 선각자였던 부모만큼이나 비범한 삶을 살았다. 1947년, 19살의 나이로 이혼한 그는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떠나는데  2년 뒤 귀국을 할 때에는 선구자였던 부모와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노라 노는 한국 ‘최초’의 여성 패션 디자이너가 된 것이다.

옷이라면 전통 의상이 고작인 시절, 뉴욕 5번가의 패션을 한국 땅에 상륙 시킨 디자이너이다. 노라 노가 없었으면 판탈롱도 미니스커트도 없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한국영화가 태동하고 있었고 디자이너라는 낱말조차 생소한 시절, 사람들은 그녀가 없었다면 영화산업이 가능할까 묻곤 한다. ‘춘희’의 최은희, 헵번과 같은 깜직함으로 시대를 사로잡았던 ‘단종애사’, ‘청실홍실’의 엄앵란,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우던 김지미도 없었다는 것이다. 노라 노는 대중문화의 지형을 바꾼 디자이너로 기억되는데 시대의 아이콘으로 각인되어 있는 이 배우들의  이미지가 노라 노가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다고 한다.

칼럼니스트 장명수가 그에게 바치는 찬사는 남다르다. 노라 노는 단순히 한국 최초의 여성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라고 한다. 이 선구적 디자이너는 문화혁명가이기도 하다. 이 나라 여성들이 ‘몸과 마음을 칭칭 동여맨 전통의 사슬’에 속박되어 있을 때 이 패션디자이너는  판탈롱과 미니스커트만큼 충격적인 현대문화를 이 땅에 소개 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그녀의 이름은 노라(Nora) 이다. 원래 노명자였던 이름이 노라라는 서양식 이름으로 바뀐 것은 어린 나이에 한 결혼이 파경에 이르고 미국 유학을 결심하던 때이다.  물론 노라는 노르웨이 극작가 입센(Hernik Ibsen) 연극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가족이라는  ‘인형의 집’에서 살던 노라가 문을 박차고 나가는 장면으로 끝이 나는 이 연극은 사회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이라면  어머니와 아내의 이름에 묶여 있던 20세기 많은 여성들의 삶의 지표가 되었다. 현대성의 중요한 문화적 지형으로 여성 정체성, 여성성(femininity)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아내와 며느리가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로 자신을 인식할 때 노명자는 스스로를 ‘노라 노’로 명명하였다.

계단을 올라가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다른 여정을 걸었던 여성의 이야기이다. 레이디 로더미어, 이정선의 이야기이다. 1950년에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정선은 1970년대 미국에 가게 된다.  20대의 일이다. 손이 고운 그에게 뜻하지 않은 직업이 생겼는데 낯선 땅에서 손 모델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지 ‘데일리 메일(Daily Mail)'를 경영하는 영국 귀족, 로더미어 경을(3rd Viscount Rothermere, Vere Harold Esmond Harmsworth)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만남은 1993년 혼인으로 결실을 맺게 되고 이정선은 한국 여성으로서 보기 드물게 영국 귀족의 반열에 든다. 이 후 레이디 로더미어는 문화 예술의 후원인으로, 장애인, 고아 등 불우한 이웃을 돕는 봉사자로서 이름을 더해 갔다.

레이디의 인생 여정은 그 호칭만큼이나 신비롭다. 계단을 올라서면 어둑한 조명이 서늘한 느낌마저 주는 공간을 만나게 된다. 방을 들어서면 곧장 만나는 오른쪽 벽면엔 다리를 겹쳐 반듯이 앉은 동양인 남자의 초상이 보인다. 탐미주의 작가로 유명하였던 일본인 작가 미시마 유끼오(Yukio Mishima)이다. 화려한 문체와 깊은 심리묘사로 일본 문학의 정수로 일컬어지는 그는 자신의 문학만큼 충격적인 죽음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45세의 젊은 나이로 1970년, 천황제와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외치며 할복하였던 것이다. 어둑한 전시장에는 그 떠들썩한 사건이 마치 그가 그려낸 또 한편의 소설이기라도 한 듯 미시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단정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아늑한 실내와 온화한 미소가 계층적 품위를 더하는 서구인의 초상이 걸려있다.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보았음직한 친근하고도 낯선 서구 이미지이다. 공간적 거리에 더하여 계층적 거리로 신비스럽게만 느껴지는 먼 이국 땅에서의 레이디로서의 이 여성의 삶을 막연하게나마 짐작하게 하는 그림이다. 이국적인 이미지와 대조적으로 눈길이 떨어지는 맞은 편 벽면에는 일상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풀숲이 눈앞에 당겨진 듯 확대되어 벽면의 풍경으로 나타난다. 그 옆 벽면에는 시점이 멀리 이동한 또 다른 풍경이 스크린으로 돌아가고 있다. 자세히 보면 산수화에서처럼 점같이 작은 인물이 풍경 속에 나타난다. 승려들이다. 고요한 풍경과 달리 승려는 분주하기만 한데 스크린이 돌아갈 때 마다 오른편에서 혹은 왼편에서 이동하는 이 승려들은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무릎을 꿇고 땅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땅을 뒤져 그가  찾는 것은 오래 묻혀 있던 연꽃이고 그의 발굴은 실제가 되어 전시장 안에서 피어난다.

어두운 전시 공간 한쪽에 신비스러운 검은 사각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등신대 크기의 사각 공간은 우물처럼 안을 들여다보게 되어 있고 고개를 떨구어 내려다 본 공간에 흰색 빛이 선연한 연꽃이 놓여 있다. 안이 거울 처리가 된 그 상자에서 연꽃은 사방으로 수십 개 복제되어 피어 간다.  거울의 매끄럽고 차가운 표면이 수면을 상기 시키는 그 상자 안에 승려가 땅에서부터 발굴한 연이 기적처럼 수십 수백개의 꽃봉오리로 피어난 것이다.

연은 지나간 기억을 물고 오는 이미지이다. “레이디 로더미어 콜렉션”이라고 부제가 붙어 있는 이층 전시장에 실상 이 여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내면을 더듬듯 이 방은 레이디의 사적인 기억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1998년, 로더미어 경은 한국에서의 장례를 고집하는 유언을 남겼다. 가루가 된 시신은 그래서 영국에 그 반을 남겨두고 바다를 건너와 무주 백련사에 묻혔다. 레이디의 어머니가 묻힌 장소이기도 하다. 자신이 훗날 돌아갈 장소라고도 한다. 바다를 건너 살았던 삶을 뒤로 두고 그녀는 굳이 돌아오고 싶어 한다. 그녀의 귀향은 사랑하는 것을 옮겨두면서 시작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녀가 돌아올 장소에 모셔두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와 여성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두 여성의 삶에 대한 전시이다.  여정은 달랐지만 이들의 삶에는 공통점이 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칭한다. 20세기는 많은 문명의 진보가 있었는가 하면 또 그만큼 어둠이 교차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과학적 진보와 더불어 학살과 전쟁, 야만적 행위가 극에 달한 것이 20세기 현대사이다.1)
서로 다른 공간에 살았지만 두 여성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트로마(trauma)를 새기고 있다. 레이디의 인생여정은 그 이름만큼이나 신비롭지만 또 아픈 이야기이도 하다. 일본에서 자란 한국 소녀는 미국으로 건너가고 거기에서 왕자님을 만나 왕비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한편 이정선의 이야기는 단정한 표정의 미시마 유끼오가 암시하듯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렸던 20세기의 조선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이기도 하다. 많은 동포가 그러하듯 그들의 부모는 1940년대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정선을 낳아 길렀다. 이방인으로 살았던 다른 조선인 동포와 같이 그도 디아스포라의 상처를 공유하고 있다.

노라 노 또한 극단의 시대를 자신의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는 1944년, 처녀를 둔 집에서는 마음이 조급했다. 조선인 처녀들을 잡아가 군인의 위안부로 삼는다는 풍문이 흉흉했기 때문이다. 여고(경기여고)를 졸업하고 한창 꿈에 부풀어 있던 노명자가 17세의 나이로 급히 혼인하였던 것도 대전 말의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군 장교로 복역하였던 남편은 전시 상황에 걸맞게 결혼 며칠만에 전선으로 돌아가고 생사를 알 수 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새댁은 황해도 해주에서 모진 시집살이를 한다. 전쟁이 끝나고 남편이 살아 왔을 때는 두 집안의 마음이 갈라서 있을 때이다. 며느리와 아내가 아니라 디자이너로서의 새 출발을 결심하였을 때 그녀는 입센의 여인과 같이 스스로를 노라라고 명명하였다. 노라로 스스로를 이름 지은 그녀가 싸워야 했던 것은 전쟁만이 아니었다. 20세기의 교차점에서도 꿈적도 하지 않았던 구식의 페미니티였다.
      
그러나 이 전시는 여성의 역사에 대한 전시만이 아니다. 20세기 현대사와 구식의 여성성의 담론 속에 이들 여성들이 자신의 몫으로 지고 살 수밖에 없었던 상처, 트로마에 대한 전시이기도 하다. 일층 통로부터 시작되는 전시는 처음부터 현실과 비현실, 현재와 기억의 문턱을 넘어선다. 길게 거울이 붙어있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듯 마주보고 있는 두 여성은 실제를 넘어선 공간에 서있다. 기억을 반추하듯 이 거울의 긴 강을 사이에 두고  두 여성이 마주 하고 있는 것이다. 등신대 크기의 초상이다. 소스라칠만큼 사실적인 초상화는 그러나 곧 환상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다. 무릎을 덮고 있는 두터운 캔버스 천은 그림에서 시작되지만 곧 거울의 반사면이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통로 지점에 달하면 실제 천이 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두터운 캔버스 천은 마찬가지로 캔버스 지지대를 이어 만든 사각 상자에 걸쳐진다. 꿈에서 본 듯 그 위에는 나비 한 마리가 사뿐히 앉아있고 이 나비로 인하여 전시 공간은 기억의 긴 순례길이 된다. 나비는 어머니를 떠나보냈던 날의 기억을 담고 있는 기표이다. 레이디의 어머니의 장례가 있었던 일본의 어느 초겨울 새벽, 나비 한 마리가 유골함에  오래 머물다 죽었다고 한다.  

노라 노 초상에서 시작되는 천의 변화는 더 극적이다. 실제인지 환상인지 연필과 콘테의 드로잉이 섬뜩하리만치 사실적인 초상화를 장식하고 있는 천은 곧 거울이 부유하는 실제의 공간으로 돌출하고 급기야 노라의 한 평생을 사로잡았던 옷으로 변모한다. 그림의  두터운 캔버스 천이 옷이 되는 이 비현실적 언캐니(uncanny)의 공간에서 이 여성의 일생의 혼을 사로잡았던 의복은 단출한 치마 한 자락이 되어 전시장 천정에 걸린다.

현실과 비현실을 오락가락하는 비현절적 분위기는 전시의 도입부만이 아니다. 노라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일층 전시장도 마찬가지이다. 1928년에 태어나 올해 팔순을 맞은 이 최초의 여성 디자이너를 기념하듯 각기 크기와 테두리가 다른 액자에 끼워진 초상화가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자기를 주장하듯 전시장 벽에 걸려있다. 삶의 다른 순간을 포착한 서로 다른 초상화이다. 아직 볼이 통통한 어린 시절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19살의 소녀 시절의 모습이 또 미국 유학 당시의 자신만만하고 발랄한 스냅사진이 초상화가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벽을 촘촘히 메우고 있는 것은 그러나 노라만이 아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같이 나타나는데 형편없이 야위고 지친 북한 포로의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맞은 편 통로에는 60년대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던 영화배우, 문희의 모습이 초점을 조절하는 영화 스크린처럼 또렷하게 혹은 그 보다 흐리게 포착되어 중복적으로 걸려 있다. 뒤에서 포옹하는 장면이나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교환하는 몸짓이 긴박한 스토리를 암시하는 영화 장면이  기억의 흐름을 따라  전시장 벽면 여기 저기 끼어든다.  이 여성 패션 디자이너의 지난 80년의 기억은 문화적 아이콘과 함께 여기에서 한국 근대사의 집단기억으로 복구된다.  

다큐멘터리적인 사실성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전시장에는 알 수 없는 비현실성이 감돈다. 이 모든 것을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것은 거울에 비치듯 초상들이 같은 형상으로 복제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활짝 웃는 생생한 스냅사진이나 19세기 조선풍경이 좌우를 바꾸어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실적인 이미지의 초상들은 오른편과 왼편이 교차된 복제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면 주술에라도 걸린 듯 사실감을 잃고 전시장은 알 수 없는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웃는 노라 노의 모습이 반복되는 이미지 때문에 중국 인형처럼 변하는 전시장은 어느덧 알 수 없는 언캐니의 공간이 되고 만다.

언캐니(uncanny)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프로이드의 1919년 독일어 논문으로 돌아가면 ‘Das Unheimliche’가 된다. 독일어로는 ‘친숙하면서도 낯설다’는 뜻이다.2) 친숙한 것들이 알 수 없고 낯설게 다가온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물의 의미가 교란된다는 뜻이다. 인간을 두려움에서 구원하는 것은 언어이다. 사물들이 낯익은 의미에 정박되어 있을 때 세상엔 구조와 질서가 드리운다. 물건들이 제자리에 놓인 집안에 들어선 듯, 정연한 언어의 상징 질서 속에 우주가 놓여 질 때 심리적 안정감도 찾아든다. 입술이 갈라지는 가뭄과 산을 쓸어가는 폭풍우 앞에 인류가 바쳤던 제사는 이해할 수 없는 자연에 언어적 상징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악하건 선하건 초월적인 신이 있고 그 신이 현재의 재앙을 만든다고 할 때 세상에는 선명한 질서가 도래한다. 사물에 질서가 깃들면 이해할 수 있다. 이해 할 수 있는 한 해결책도 있고 두려움도 사라진다.  
  
그러나 낯익은 사물들이 친숙한 의미의 고리에서 떨어져 나올 때 세상은 알 수 없는 언캐니의 세상이 되고 만다. 두려움이 밀려오는 것도 이 때이다. 언캐니는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여성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주어진 여성성을 거스르는 것은 자신의 사회의 의미의 질서를 이탈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 의무와 타부의 상징질서가 정연한 세상은 고되지만 두렵지는 않다. 여정의 길목 마다 안내판이 붙어 있고 아직 다하지 않았지만 그 길이 끝나는 지점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숙한 의미의 질서를 빠져나오는 순간 오리무중의 우주를 대면하여야 했던 인류의 조상처럼 두려움이 밀려온다. 윤리가 교란된 이 회색빛 세상에서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옳은지 그른지 확신조차 서지 않기 때문이다.

층계를 사이에 두고 엇갈려 전개되는 전시는 주류 역사가 관심을 갖지 않는 두 비범한 여성의 삶을 포착하고 있다. ‘순혈 혈통’의 민족계보가 강조되는 우리 현대사에는 포착되지 않을 ‘미시’역사이고 마주 본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주거니 받거니 풀어내는 구술사의 전시이다. 여성의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역사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구식의 여성성에 대항하여 새로운 문화를 들여오는 여성의 역사나 디아스포라로 세상을 건너 우뚝 섰던 여성의 이야기는  ‘민족과 외세’라는 이분법속에 혈통적 피해의식을 강조하는 역사 패러다임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 이상이다. 사실적인 초상화가  언캐니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조덕현의 전시는 의미의 질서를 이탈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감당하여야 할 상처, 트로마에 대한 전시이기도 하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들을 선구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개척해야 할 길 만큼 어려운 일은 의미의 빛이 꺼져 있는 우주를 대면하는 일이다. 여성의 과거를 복원하는 이 전시가 그 의미의 한 축을 세우는 작은 기념비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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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노, 노라., [ 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 하다], 서울: 황금 나침반, 2007년
프로이드, 지그문트.(1919), “두려운 낯설음”,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 정강진 옮김, 열린책들, 1998
프로이드, 지그문트.(1920),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 박찬부 옮김, 열린책들, 1998
“원로가 대접받아야 문화에 힘 생겨”, 중앙일보, 2007, 5,17
Eric Hobsbawm, [Age of Extremes, The Short Twentieth Century, 1914-1991], London: Abacus,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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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From History to Memory_ Jiyoon Lee  
22   Butterfly Dreams, Mirrors and Mountains / Notes for Duck Hyun Cho: re-collection _ Pontus Kyander  
21   나비 꿈, 거울과 산 / 조 덕현을 위한 기록 : 리-컬렉션 _ 폰투스 키안더  
  조덕현의 전시: 리콜렉션 re-colllection _ 신지영  
19   역사에서 기억까지 _ 이지윤  
18   The Scattered Puzzle Pieces _ Dae-Beom Lee  
17   흩어진 퍼즐 조각 _ 이대범  
16   Re-collection : Walking down two women's paths _ Jiyoung Shin  
15   Cho Duck–Hyun _ Ann Landi  
14   조덕현 _ Ann Landi  
13   Ontmoeting: (Trans) fusion of Landscape Portraiture and History Painting by Use of a Symbolical Device in Cho Duck Hyun's Digital Photo-Images _ Inhee Iris Moon  
12   A moral proposal _ Patrick T. Murphy  
11   Two Mysteries Colliding _ Chtistopher French  
10   Leaning forward, Looking back – Jeff Kelly  
9   Restoration of Civilization _ Yongwoo Lee  
8   Reversing the Historical Imagination _ Young June Lee  
7   Entering Yiseoguk _ Choi Won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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