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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서 기억까지 _ 이지윤 2008/09/01
역사에서 기억까지 _ 이지윤



‘과거의 기억 중 현재에 재현 되지 않는 것들은 회복이 불가능하다.‘ - 발터 벤자민

조덕현은 역사의 본질을 회상하며 사진처럼 사실적인 드로잉과 이를 이용한 설치 작품을 보여주는, 김영나에 의하면[1] ‘여러 종류의 삶의 흔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슬픔과 즐거움을 반영하는 작업’을 보여주는 역사화가로 묘사되고 있다. 그의 20세기의 추억 과 계보학 시리즈, 발굴작업[2] 모두 역사와 고고학에 대한 그의 관심이 반영된 작품들로서 그가 오래된 흑백사진을 대형-극사실적인 캔버스 작업으로 재현하고 이를 그의 설치작업의 주된 요소로 사용하는 것 모두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위의 설명이 분명 정확하기는 하지만 이는 그의 초기작업에 대한 설명이고, 최근 들어 그의 작품은 조금은 더 새로운 차원- 포스트휴먼 조건인 ‘인간의 상태와 기억의 각인’이란 부분에 있어 보다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에 대해 더 접근하는 작품으로 보여진다.  


‘역사는 우리에게 단지 설명적인 형태로만 존재할 뿐이다.’ - 프레드릭 제임슨

사전적인 정의에 의하면, 역사란 과거의 사건들의 기술(記述), 그리고 과거의 사건들을 해석하고 기록하는 지식의 한 파생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매우 간단한 정의이지만, 이 정의의 가장 기본적인 분석조차 이것이 얼마나 큰 복잡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에 일어난 각각의 사건들, 해프닝들은 각각은 시공간 안에서 각각 그 개별성을 지닌다.
이들을 역사라는 커다란 이야기 안에 엮어 넣어 우리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프레드릭 제임슨이 말하는 것과 같이, 사건들은 사회적이든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평상적이든 모든 것들이 문맥적으로 이어져야 하며 이를 특별한 목적이나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전체적인 큰 부분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고취시켜야 한다는 이유에서 이다.

바로 이것이 개별적인 사건들을 모두 모아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 형태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과연 효과적인 일인 것인가? 현재의 이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한가지 틀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추려는 큰 스케일의, 권위적인 역사적 해설들에 대한 불신과 회의론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발터 벤자민이 지적했듯이, 전통적인 의미의 역사는 승리자들이나 역사적인 해석을 남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바로 그러한 연유로 항상 일정부분은 편견을 앉고 있는 것[3]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회의는 일견 옳아 보인다.
이 주요 해설자들은 소시민적이고, 소수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소소한 사건들은 하찮은 것으로 여겨 이를 무시하고, 이들이 주된 역사적 해석 안에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확정한다.

그렇지만 작은 사건이라도 커다란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예를 들어 나비효과- 나비의 날갯짓이 대형 허리케인을 만들 수 있다는 이론)
이러한 ‘하찮은’, ‘지역적인’, 그리고 소수의 의견이 큰 관심과 중요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즉, 보편적인 역사, 긴 시간의 역사에서부터 지역적이고 꾸밈없고 솔직한, 뜻밖의 역사로 그 축 이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조덕현의 작품은 이러한 경향, 즉 개인적인 역사, 소수, 특히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지역의 사건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그의 작품이 다루는 소제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에는 나름대로의 논조가 존재한다.

월쉬에 의하면[4] 전통에 대한 신(新)-보수적 입장과 현대역사해석에 대한 적법성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거부는 양식(style)의 전통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것의 중요한 특징은 이러한 특징적인 양식들이 실재적인 역사적 맥락 안에서부터 적출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현재 혼용성(混用性)으로 지배되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유머 없는 패러디, 또는 제임슨의 표현대로라면 ‘원본을 조롱하는 이미테이션’[5] 들로 가득 찬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의 원전이 무엇인지, 아니면 이들의 원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생각 없이 진행하는 이미지의 사용과 재사용은 이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각적 요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조덕현의 작품은 과거의 이미지의 재현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그 보다 더 큰 무엇이 이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재현과 기억의 학습

조덕현의 작업은 다양한 역사의 사건과 역사적 이미지의 연구에서부터 출발하였을지 몰라도, 최근에는 기억과 그것의 다양한 반향들에 대한 연구 즉, 기억의 의미와 내용, 또한 그것에서 추출될 수 있는 다양한 연계적 상상 - 그것이 개인적이든 인종적이든, 기록물이건 아니건 간에- 에 집중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최근의 피터 웨이크필드 경 컬렉션(2006)을 보면, 피터 경과 함께 나눈 많은 이야기들과 그가 제공한 사진을 기반으로 컬렉션이 만들어 졌지만, 이 컬렉션에서는 피터 경의 ‘다양한 생의 시기’는 보여지지는 않는다. 피터 경의 초상화는 다른 인물이미지와 함께 같은 캔버스에 그려져 있다. 그는 한국최초의 외교관인 민영환의 이미지로, 그들의 국가에 대한 헌신과 애국이라는 공통적 정신에 의거하여 선정된 작가의 해석에 의한 시도이다. 두인물은 시가적으로, 또 장소적으로 한번고 같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이나 그의 작품세계에서는 간헐적인 연계성을 가지고 캔버스라는 한시간과 한 공간안에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피터 경의 개인적인 기억과 작가의 개인적인 기억이 병치(倂置)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이 피터 웨익필드 콜렉션에는 아무 이미지도 담지 않은 검은 프레임의 캔버스와 거울을 담은 프레임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이 작품은 기억의 기본적 구도들, 어둡고 밝음, 따뜻함과 공포, 자궁과 탄생과도 같은 시작을 제시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니 이는 좀더 나가 그 작품들을 보고 있는 관객의 기억과 그들의 반향까지도 작가는 수용하며, 그들의 연계적 상상을 동시에 진행하고자 하는 장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조덕현의 이러한 접근 방식과 과정은 또한 그의 발굴작업에서도 볼 수 있다. 때로는 캔버스 작품으로, 때로는 군집적 콜렉션으로 서로 각기 다른 모습의 프로젝트 형식을 취할 수 있지만 모두 작가가 가지고 있는 지속적인 같은 맥락에서 해석 될 수 있다.

<이서국으로 들어가다>와 <유레카>가 모두 가상의 국가나 전설을 기반으로 한 고고학적 발굴 작업이지만 이를 단지 허구로만 치부하기에는 작품 곳곳에 장치된 지역의 진실된 사실에 근거한 자취들의 병치를 통해, 그 결과 단지 허구적 가상세계가 전하는 흥미나 관심이상의 유머나 아이러니를 통한 큰 감동을 준다. 심지어는 이 기억들은 아무런 기록이나 흔적이 남겨져 있지 않던 과거의 기억(즉, 진위여부를 알 수 없는)을 다루어 사실과 가상 내에 존재하는, 단지 연계적 상상으로만 접근이 가능한 새로운 서사와 시공간을 만들어 내었다.

조덕현의 작업은 의미와 사용방법, 그리고 언어의 중요성이 끊임 없이 변화 하는 현재, 역사화나 역사적 연구라는 경계로 보여지고 해석 되어지는 작품세계에서 한발자국 더 진보했다. 현대미술이 21세기에 들어서 더욱 인간이 살아가는 이 시공간에 대한 관심과 삶 대한 기본적 요소에 대한 더 깊은 탐구를 요구하는 시점에서, 그의 작업은 실재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강한 추상적인 성격이 더 많이 부여 받게 되었다. 역사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지고, 이제는 과거의 스타일과 이미지를 탐구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되었다고 여겨지는 요즘, 조덕현은 현대미술 안에서 과거의 이미지와 기억이 어떠한 방법으로 연구되어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또한, 거기서 미술이라는 시각언어로 만들어지는 그의 판타지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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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영나(2005) 한국의 근현대미술, 서울,호림
[2] 이서국으로 들어가다(2002) 경주와 청도에서의 발굴프로젝트, 유레카(2003) 아시아미술관에서의 발굴 프로젝트, 샌프란시스코
[3] 벤자민, W (1940) 역사의 컨셉에 서서
[4] 월시 케이(1992) 과거의 재현, 런던,라우트레지
[5] 제임슨, 에프(1983)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 에이치 포스트(ed)포스틈던 문화, 런던: 플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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